개념어 사전 p. 247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마친 뒤 배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사업가가 말을 건넸다.

“하루에 몇 번 고기잡이를 나가쇼?”

어부가 대답했다.

“한 번이오.”

“여러번 나가면 고기를 훨씬 더 많이 잡고 돈을 많이 벌 거 아니오?”

“많이 벌면?”

“돈이 많으면 훨씬 풍족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지 않겠소? 일에 매달리지 않고 느긋하게 항구의 풍경을 즐기면서 말이오.”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잖소?”

이 이야기에서 어부와 사업가는 삶의 질을 끌어 올린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사업가는 돈이 삶의 질적 향상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는 데 비해 어부는 이미 삶의 질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정답에 가까운지는 자명하다. 어차피 돈을 벌어 삶의 질을 살 거라면 돈을 버는 힘든 과정을 생략한 어부가 지름길에 있는 거니까.

흔히 삶의 질은 빈곤이 해소된 뒤에야 고려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앞의 이야기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이야기에 나오는 어부는 ‘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의미에서’ 외부인(사업가)의 시선으로 보면 빈민에 속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빈곤 자체도 그럴진대 삶의 질을 객관적인 지표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좋은 글이다.

 

혼자와 함께, 그 큰 차이.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오는 유학시절의 잔재가 있다.

해가 떠있을 무렵 깜빡 소파에서 잠들었다 깨고나면 어느덧 밤이었다. 캄캄한 거실벽을 두드리는 화면과 적막 속에 웅성이는 소리. 또 TV를 그대로 켜놓고 잠들었었나보다. ‘밥 먹을 시간이야’ 혹은 ‘들어가서 자’라고 나를 걱정하는 누군가가 깨워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 주섬주섬 더듬더듬 방까지 걸어 들어가는 그 고독이 일상일 때. 나 하나 감쪽 같이 사라져도 몇일 간은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그게 얼마나 뼛속까지 휑해지는 일이었는지, 그 절망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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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연휴의 마지막 날.

재방송을 보다가 눈꺼플이 무거워져 잠에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는 어둑어둑 져있고, 또 홀로 떠들고 있는 TV를 보고 있자니 그 때의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해졌다.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는 순간. 베고 잠든 것이 평생 나를 돌봐줄 사람의 다리이고, 그 사람도 비슷한 노곤함에 잠에 들어 곁에서 새근새근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그래, 다시는.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아, 나에겐.

엉금엉금 다가가 폭 안겨본다.
잠결에도 더 가까이 나를 당기는 팔.

예전의 나를 아는 누군가가 괜찮냐, 물어본다면
그럼요. 이제 11월도 무섭지 않은걸요. 대답하리라.
그 만큼 괜찮다. 아주 많이 괜찮다.

시작.

어렸을 적 홀로 떠났던 유학의 길이 늘 나 혼자로도 온전해지길 강요했으니, 그저 내 중심적으로 만들어 온 세상에 누군가를 들이고 그 틀을 넓혀간다는 것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상상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우리의 관계는 나의 공간을 마지못해 내줘야 하는 일이 아니라, 어느 날 우연히 걸어 들어간 서로의 세상이 참 자연스럽게도 ‘내 집’이 되는 잔잔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생긴 확신 하나만으로 목에 핏대를 세워 결혼을 지양했던 지난 날 나의 고집은 아주 빠르고 허무하게 무너졌다. 머쓱하군.

아무쪼록 길었던 나의 방황에 이별을 고하고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나라는 중심에서 벗어났더니 더 소중한 것들이 내 삶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 둘의 세상을 전부 안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은 아버님의 품. 사위 손을 잡은 아빠의 손에서 느껴지는 유독 단단한 매듭. 부족한 며느리를 혜량해 주실 어머님의 호탕한 웃음소리. 사위 온다고 종일 콧노래 부르며 요리하다 지워진 엄마의 춤추는 눈썹. 생일마다 뭐 갖고 싶냐는 물음에 “매형 (Hawk brother) 한 마리”라 대답하던 남동생이 아직까지도 느끼지 못하는 그 실감. 그리고 퇴근 길, 저만치에서 마중 나오는 5년 전 그대로의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 달려가서 안겨도 모자랄 것 같다, 그 순간 느끼는 그 사랑을 표현하기엔.

이따금 살면서 살이가 힘들어져도 지금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다면 마음만은 늘 풍요로울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고 아쉬운 것인지 함께 알아가겠지. 찬란할 우리의 날들…

시작이다!

내 마음을 여(울리)는 독거노인의 삶.

5월의 끝자락은 참 기억도 하기 싫은데, 희한하게도 6월로 이어지는 나쁜 기억은 다 잊혀졌다. 봉평의 감자밭과 원주 양귀비밭을 엄마와 함께 걸은 맑은 기억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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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장마철이니 빨래를 삶아야 할 것 같아.

커다란 냄비를 사러 마트로 간 그. 돌고 돌다 결국 못 찾고 나온다.

= 세탁기에 ‘삶기모드’ 같은 게 있을거야. 해봐.

답이 한참 없더니, 밤 11시 40분에 빨래를 넣어 돌리고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사이클은 무려 두 시간 가까이 남았다. 으이그, 그 시간에 빨래를 돌렸다 언제 자려고.

몇달전 너 시집갈 때 드시려고 할아버지께서 담그신 술이 50년 되는 꼴을 보고 말거냐 는 엄마의 말에 그냥 땅에 묻어! 소리쳤던 나. 결혼에 관한 환상도 없고 오히려 회의적인 입장에 가깝지만, 드문드문 그 가능성에 마음을 여는 순간들이 오기도 한다.

어제처럼 빨래 푹푹 삶는 것 쯤은 내가 해주고 싶을 때. 혹은 밥을 혼자 먹게 하는 마음이 불편할 때. 냉장고 문을 여는데 맥주병이 청아하게 부딫히는 그 텅텅 빈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릴 때. 틀어놓고 잠든 TV는 내가 꺼주고 싶을 때. 잠결에라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을 때.

이렇게 받고 싶은 것 보다 해주고 싶은 게 더 많아질 때 드는 서른셋 낡은이의 결혼 생각. 나도 나를 내려놓을 시기가 오는걸까.

사소한 감동.

그렇게 뿌듯하고 좋을 수가 없다.

벽돌과 벽돌 사이를 단단히 메운 진흙.
외로운 새벽, 문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
그런 존재로 산다는 것.

닿지 않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어도
한 켠 나를 놓지 않고 있을 거라는 믿음.
일상 어느 짧은 순간에 잘 끼워진 내가
숨을 쉬며 살아있다는 사소한 감동.

내가 어떤 의미의 사람인가가 궁금하지 않은 것.
전부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아닌 것.

수도꼭지.

디어 마이 프렌즈.

‘내가 왜 엄마꺼야!’ 소리치며 난희와 몸싸움을 벌인
완이의 서러운 오열에 나도 눈물이 철철철.
엄마가 말한다, ‘이 드라마 네가 썼니. 아님 내가 썼니.’
엄마도 같이 운다.

노희경 작가는 우릴 다 죽이려는 걸까.
그 동안의 작품보다 더 좋다, 최고인 것 같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다 사랑스럽다.
초반에 거슬렸던 희자씨마저도.
‘자식들은 부모가 택배 보내는 것도 싫어한대,
그 안에 부모가 있을까봐.’
이 대사에서 뭐랄까, 희자씨에 대한 마음이 참…

금토마다 많이 울어서. 원 없이 울어서.
일요일 아침은 얼굴이 호빵맨이 된다.
꿈에서 시달리면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 듯.

비가 오네.
장마다 벌써.

엄마의 엄마가 보고싶고,
아빠의 엄마가 보고싶다.

마즙이 아니라, 마음이 왔다.

집 주소로 사람만한 곰이 배달되던 날,
빈집이라 나중에 직접 가서 곰을 업고 데려왔다.
너 때문에 별 짓을 다하는구나.
너 때문에 내가 못 살겠다.
맥주를 비우며 말했다.

곰을 의자에 앉혀놓고 술을 마시기도 했고,
울다가 같이 누워 잠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팔이 찢어지고
엉덩이에서 솜이 터져 나왔다.
책상 아래에서 먼지가 쌓였다.
곰은 노환으로 죽었다.

그래도 배달되어져 온 그 날엔,
곰이 아니라, 마음이 왔다.

또 어떤 날은 풀무원에서 전화가 온다.
잦은 건강문제로 아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나 마즙 싫어해. 라고 대답할 참이었다.

그런데 배달하는 아주머니가 말한다.
매일 챙겨 드시게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당부를 하셨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 후에는 듣지 못했다.
손이 툭 떨어졌다.

마즙이 아니라, 마음이 왔다.

그러니까 괜찮다.

이별은 다양하다.

몸살전에 오는 두통처럼 조짐이 보이는 이별도 있고, 바람에 쾅! 닫히는 문 처럼 갑작스러운 이별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이별은 똑같이 힘들다. 헤어지고 나면 우선 내 편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낀다. 갑자기 화가 나고 갑자기 서글프고 갑자기 우습다. 그러다 보면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어느 순간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걸 아니까 애인과 헤어진 친구가 부르면 어떡해서든 간다. 떠나간 그를 같이 신랄하게 욕하거나, 함께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해 끌어안고 울지도 않고. 헤어지길 백번 잘했다며 더 좋은 사람 소개시켜 주겠다는 헛된 희망도 전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친구들과 술을 먹고 헤어진 자리에 찾아가 고추장에 빠져 있는 휴대폰을 꺼내 닦아주고, 취해서 헛소리 하는 옆에서 오징어를 오물오물 씹으며 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다가, 깼다 싶으면 택시를 불러 집에 보낸다. 이 정도면 별로 큰 폐는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만 돌본다. 나에게까지 미안하지 말라고.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 못 해준 것만 떠올라 미안함으로 가슴을 치고 있을테니까.

온다고 하면 오라고 한다. 머리도 제대로 안 말리고 며칠 굶은 사람처럼 와서, 한 쪽 구석에 앉아 울다가 웃었다가 화를 냈다가 하는 모습을 적당히 모른 척 둔다. 나는 옆에서 타자소리가 끊이지 않게 글을 쓰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드라마 한 편을 틀어놓고 본다. 부르면 잠시 눈길을 그 쪽으로 돌렸다가, 원망이든 슬픔이든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다시 하던 일을 한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인기척 하나만으로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도 하니까. 말을 하기 보다는 주로 듣는 쪽이지만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몸 어딘가가 닿게 앉는다. 헤어지고 나면 만지고 만져지던 기억도 그리워 온몸이 휑뎅그렁하게 느껴질 때 손가락이나 무릎이 닿는 촉감은 꼭 그의 것이 아니어도 위로가 되곤 한다.

결혼과 출산 소식을 더 자주 듣게 되는 나이. 그런데 5월, 연이은 이별 소식을 접한다. 밤에 운전하는 일이 많아졌고 문닫기 직전의 카페에 앉아 있는 일도 늘었다. 모두 살면서 이별을 하고, 헤어지고 나면 누구나 힘들기 마련. 늘 웃으며 돌아서는 나에게 또한 이별은 그렇게 무섭다. 그의 냄새, 말투, 웃음소리, 하찮은 발걸음까지도 그리워 시도때도 없이 울컥한다. 껌종이 뒤에 그가 써놓은 중국집 전화번호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끝내 같이 보지 못한 영화 포스터를 올려다보며 강남역 한복판에서 호떡을 든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다 안다. 다 겪었으니까. 그러나 헤어진 후의 친구들에게 정작 하고 싶은 위로의 말은 이게 아니다.

헤어진 건 헤어질 수 있어서다. 헤어질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한 거고, 그러니까 괜찮다.

보살, 김사인

그냥 그 곁에만 있으믄 배도 안 고프고, 몇날을 나도 힘도 안 들고, 잠도 안 오고 팔다리도 개뿐혀요. 그저 좋아 자꾸 콧노래가 난다요. 숟가락 건네주다 손만 한번 닿아도 온몸이 다 짜르르혀요. 잘 있는 신발이라도 다시 놓아주고 싶고, 양말도 한번 더 빨아놓고 싶고, 흐트러진 뒷머리칼 몇올도 바로 해주고 싶어 애가 씌인다요. 거기가 고개를 숙이고만 가도, 뭔 일이 있는가 가슴이 철렁혀요. 좀 웃는가 싶으면, 세상이 봄날 같이 환해져라우. 그길로 그만 죽어도 좋을 것 같아져라우. 남들 모르게 밥도 허고 빨래도 허고 절도 함시러, 이렇게 곁에서 한 세월 지났으면 허라우.

잘 있는 신발이라도 다시 놓아주고,
고개만 숙이고 가도 철렁한다는
그 시인의 첫 페이지는
‘고요로 깊어지소서,’ 라고 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