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하다.

고등학교 내내 한 명의 남자친구. 꽤 긴 시간 그를 보며 지냈다. 어느 날 기숙사 창문으로 내다본 저 아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남학생들이 점처럼 작게 보였였다. 그 중에 내 남자친구가 누구인지 한 번에 알아보는 신공이 생겼다. 내가 그를 오래 관찰해 왔기 때문일 거다.

효림언니가 흰콩이를 낳았을 때 조리원을 방문한 나는, 늘 뱃속에서만 내 목소리를 들었을 흰콩이와의 첫 대면이 경이로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순간 눈물이 왈칵했던 이유는 고작 한 시간만 이렇게 바라봐도 눈이며 코며 입이며 이마까지도 눈에 익숙해지는데,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한 달을 몇 년을 바라보는 내 아이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하는 애잔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관찰이라는 게 무섭고도 중요한 것이리라.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첫 번째는 관찰이다. 일상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것. 그 것이 인사이트와 연결된다. 그래서일까, 힐러리 교수는 내 글에 막힘이 느껴질 때마다 오늘은 수업에 오지 말고 카페에 앉아서 하루 종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라고 풀어주었다. 그 때 지켜봤던 몇 명의 특이한, 혹은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얼굴이며 표정이며 섬세한 손짓까지 기억이 난다. 자욱한 세월만큼이나 낡은 책 속, 여사님 사진을 책갈피로 쓰고 계신 할아버지라던지. 나 처럼 몇 시간 동안 깜빡이는 커서만 들여다보고 있던 고뇌의 글쟁이라던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작은 행동, 소소한 습관들.

비록 좋은 글을 쓰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가장 열심히 관찰하는 것은 나 스스로다. 지금 내 감정의 기복들, 우울이 어느 지점에 와있는지, 하루에 몇 보를 걸었는지, 최근 밥과 면의 비율이 어느 정돈지, 알러지는 어떤 이유로 발병하는지, 타인에 대한 내 잣대가 어디쯤인지,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지, 미움은 또 어디에 두었는지. 매일 관찰하고 살핀다. 그래서 나에 대한 글은 잘 쓸 수 있다.

작년 혼인신고를 하면서 그의 이름을 한자로 그려적고, 생년월일을 쓰고, 마음이 뭉클해졌었다. 이제 나 말고도 박승환이라는 사람을 관찰하게 되었구나. 늘 소파에서 잠들고, 뭔가에 집중 했을 때의 표정, 유난히 즐겨입는 옷, 싫어하는 사람, 몸 어디에 점이 있는지, 상처가 있는지, 어디가 아픈지, 또 어디가 예쁜지.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그에 대한 글도 잘 쓸 수 있겠지.

귀 뒤로 이어지는 목선을 엄지로 어루만지며 이렇게나 가까워진 그와 내가 놀랍다. ‘여길 이렇게 쓰다듬을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 나 하나 뿐이겠지.’ 유독 특별한 이 특별함. 무엇보다 내가 전혀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이 감정들을 겪고 느낄 수 있게 되어 고맙다. 나날이 겸손해지며 사소한 것에도 무척이나 감사하다. 매일 매일 본질에 가까운 사랑을 알아가며, 이제서야. 정말 지금에서야, 비로소 행복한가, 싶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관찰하는 중이라면 이 행복이 당신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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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respect invites disrespect.

“Thank you very much. Thank you very much. Thank you. Please sit down. Please sit down. Thank you. I love you all. You’ll have to forgive me. I’ve lost my voice in screaming and lamentation this weekend. And I have lost my mind sometime earlier this year. So I have to read.

Thank you, Hollywood foreign press. Just to pick up on what Hugh Laurie said. You and all of us in this room, really, belong to the most vilified segments in American society right now. Think about it. Hollywood, foreigners, and the press. But who are we? And, you know, what is Hollywood anyway? It’s just a bunch of people from other places.

I was born and raised and created in the public schools of New Jersey. Viola [Davis] was born in a sharecropper’s cabin in South Carolina, and grew up in Central Falls, Rhode Island. Sarah Paulson was raised by a single mom in Brooklyn. Sarah Jessica Parker was one of seven or eight kids from Ohio. Amy Adams was born in Italy. Natalie Portman was born in Jerusalem. Where are their birth certificates? And the beautiful Ruth Negga was born in Ethiopia, raised in — no, in Ireland, I do believe. And she’s here nominated for playing a small town girl from Virginia. Ryan Gosling, like all the nicest people, is Canadian. And Dev Patel was born in Kenya, raised in London, is here for playing an Indian raised in Tasmania.

Hollywood is crawling with outsiders and foreigners. If you kick ’em all out, you’ll have nothing to watch but football and mixed martial arts, which are not the arts. They gave me three seconds to say this. An actor’s only job is to enter the lives of people who are different from us and let you feel what that feels like. And there were many, many, many powerful performances this year that did exactly that, breathtaking, passionate work.

There was one performance this year that stunned me. It sank its hooks in my heart. Not because it was good. There was nothing good about it. But it was effective and it did its job. It made its intended audience laugh and show their teeth. It was that moment when the person asking to sit in the most respected seat in our country imitated a disabled reporter, someone he outranked in privilege, power, and the capacity to fight back. It kind of broke my heart when I saw it. I still can’t get it out of my head because it wasn’t in a movie. It was real life.

And this instinct to humiliate, when it’s modeled by someone in the public platform, by someone powerful, it filters down into everybody’s life, because it kind of gives permission for other people to do the same thing. Disrespect invites disrespect. Violence incites violence. When the powerful use their position to bully others, we all lose.

This brings me to the press. We need the principled press to hold power to account, to call them on the carpet for every outrage.That’s why our founders enshrined the press and its freedoms in our constitution. So I only ask the famously well-heeled Hollywood Foreign Press and all of us in our community to join me in supporting the 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 Because we’re going to need them going forward. And they’ll need us to safeguard the truth.

One more thing. Once when I was standing around on the set one day whining about something, we were going to work through supper, or the long hours or whatever, Tommy Lee Jones said to me, isn’t it such a privilege, Meryl, just to be an actor. Yeah, it is. And we have to remind each other of the privilege and the responsibility of the act of empathy. We should all be very proud of the work Hollywood honors here tonight.

As my friend, the dear departed Princess Leia, said to me once, take your broken heart, make it into art. Thank you.”

Meryl Streep’s Golden Globes Acceptance Speech,9 January 2017 (원문출처: Harpersbazaar).

식도를 앗아간 굴국밥.

겨울이니까 굴국밥.
점심에 먹으러 갔는데
굴국밥에 굴이 하나도 없는 거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깜빡하고 굴을 안 넣으셨다고.

미쳤나.

미안하다고 굴을 따로 담아서 내주심.
샤브샤브로 먹으란 건가.
굴을 넣고 끌여서 맛있는 국밥을 먹으러 간건데
망했다.

근데 컴플레인은 또 못 거는 성격이니까
닥치고 먹었는데 맛이 없음.
맛은 없는데 급하게 밥알을 목에 처넣다가
식도를 데였다.

식도를 데이긴 또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아직도 침을 삼키면 목이 아프다.

정민이가 죽었다.
무례를 무릅쓰고 왜 죽었냐 수소문을 했다.
사실 이유가 궁금했던 것은 아닌데,
스스로를 죽인게 아니라는 걸 꼭 확인하고 싶었고
확인받고 나니 안심이 됬다.

미쳤나.

11일에 죽었는데, 23일 치르는 장례식.
상해에 있는지도 몰랐는데 상해에서 도착한다는 시신.
십몇년 만인가?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 없다.

양치를 하려는데 치약을 짜고 나서 칫솔을 보니
응? 방금 짠 치약은 없고 솔이 그대로네.
뒤로 돌려보니 솔 반대편에 치약이…

미쳤나.

간밤에는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몇 번을 일어나 확인했다.
새벽에 깨어 거실로 나갔나? 살아는 있나?
고개를 돌려보면 그대로 살아 새근새근.
오늘따라 코를 골지 않는 남편이라니…

분명 이상한 하루지만,
사실 이상할 것도 없다.

논리적 비논리.

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가슴 아프다. 내 조카나 사촌동생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난 지금 청와대에 폭탄을 들고가 다 죽이고 나도 죽었을 거다. 하지만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거나 노란 팔찌를 착용하진 않는다. 그런 걸 하지 않아도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있고, 반드시 그런 걸 착용해야만 그 아이들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난 광화문에 나가지 않았다. 광화문에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광화문에 나간 사람들 만큼 이 상황이, 이 나라가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다. 반드시 광화문에 나가야만 의식있는 국민이고, 그렇지 않은 국민은 나중에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한국 사람들의 이분법적 태도는 늘 커다란 사건이 일어날 때 발현된다. 적 아니면 동지. 나쁜 놈 아니면 좋은 사람. 참 아니면 거짓. 적이었던 사람이 동지가 되는 순간이 있고, 나쁜 놈이었던 사람을 역사적으로 따지고 보니 착한 사람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감히 참과 거짓을 누가 가려낸단 말인가.

나와 함께하면 내 편이고, 나와 함께하지 않으면 남의 편이라는 생각. 최소한 민주주의 국가라 불리고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면 그 생각부터 버려야 하지 않을까. 답답하다.

결혼은 다행이다.

스물 여덞의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누군가는 집에 바래다 주기 귀찮아서 결혼을 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결혼을 하니 여행 파트너가 늘 같은 사람이라 고민을 안해 편하다고.

결혼을 하면 헤어지지 않고, 다른 곳에서 잠들지 않고 휑하게 혼자인 기분 없이, 평생을 같이 있을 수 있는건가. 정말 신기하게도 그게 보장이 된단 얘긴가.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가 예민해서 엄마가 재워놓고 나가는 즉시 다시 울기 시작했다는데, 세살때의 그 버릇은 역시 어디 안가더라. 스무살이 되던 무렵. 내 방에서 나 혼자 잠드는 일이 무시무시하게 끔찍한 날이 자주 있었다. 평생 같은 자리에 타인과 누워 잠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니니까. 그럼 세살 버릇도. 그리고 스무살 그 때의 공포도 해결이될까.

결혼, 왜 자꾸 주위에서 하라고 하는거지? 잠 푹 잘 수 있는, 외롭지 않은, 이런 상투적인거 말고 나 처럼 세속적인 여자에게 결혼이라는 것의 ‘투자가치’ 를 좀 더 세세히 설명해 달라고.

근데 뭐, 잠 푹 잘 수 있고 외롭지 않은, 그런건 꽤 할만 하겠다.”

– 2011년 1월 27일, cyworld @12afterglow.

과거에 쓴 글을 접할 때는 늘 절로 나오는 콧방귀에 ‘또 개소리 했네’ 싶지만, 서른셋의 끝을 바라보는데다 얼마전 정신없이 준비한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관점이 바뀐 것이지 꼭 쓸데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아 예전에 생각했던 결혼과 지금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교해보기로 했다.

일단 결혼하면 잠을 푹 잘 수 있다고? 그렇지 않다. 이유는 뭐, 혼자 써오던 침대를 반씩 나눠 쓰는 협소한 공간, 뺏고 뺏기는 이불, 선호하는 방의 온도차이 등이 있겠고. 그리고 무엇보다 며칠전 신사역 뒷골목에서 으르렁 대던 람*르기니를 보며 ‘저런 값비싼 민폐’라고 말한게 무색한 코골이. 그렇다고 누구처럼 지쳐 잠든 남편의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을 수는 없겠고. 시끄럽다고 옆구리를 주먹으로 강타할 수도 없겠고. 아직 미운정은 없고, 고운정만 있어서인지 ‘얼마나 피곤하면 저런가’ 싶어 안쓰러움이 크지만 (쓰담쓰담), 어찌됐건 결혼 준비를 시작한 몇 달전부터 지금까지 쭉 극심한 수면부족에 시달린 덕분에 만원 지하철에 낑긴 몸을 맡기고 선채로 잘 수 있는 고단수 뚜벅이가 되었다. 반면 꿈속을 헤메다 드문드문 의식이 들 때 곁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안도하곤 한다.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혼자 잠들고 깨는 것에 대한 스무살 그 때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의 코골이가 자장가가 되주지 않으면 허전해서 잠을 이루지 못 하는 밤도 올테니, 그 또한 다행이다.

외롭지 않다고?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그의 노력 덕택에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혼인 및 전입신고를 마치고 나오는 길 나는 그를 만난 후 처음으로 일종의 외로움을 느꼈다. 친정의 일원이 네명이었던 것에 반면, 이제 덩그러니 둘만 있을 단촐한 핵가족. 폐백 때 품은 대추 9개와 밤 3개를 빌미로 9남 3녀는 낳아야 하지 않겠냐고 농담처럼 던졌지만 사실 그 순간 나는 엄마아빠로부터 완전히, 아니 법적으로 분리된 것에 관한 서운함과 만약 그와 헤어진다면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젓갈도 없이, 숟갈도 없이, 혼자가 된다는 막연한 공포심을 느낀 것 같다. 물론 외로움을 느낀 대신 법적 부부가 되었다는 것의 안정감은 결혼전 주기적으로 질풍노도를 겪은 나에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큰 힘이다. 여담이지만 며칠 전 우연히 발견한 어떤 사실에 관해 혼자 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암만 그래봤자 넌 내꺼’라는 법적 족쇄가 한몫했다. 연애중이었다면 홀로 골머리를 앓고 스스로 상처를 들추다 결국 술 먹고 진상 피웠을 법 한 일인데도 말이다.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커지고, 포용할 수 있는 품이 더 넓어진 것 같다. 그게 9남 3녀의 몫이라 할지라도…(ㅋㅋㅋ) 그리고 이런 변화가 내게 생겼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바래다 주기 귀찮아서 결혼을 했다? 바래다 주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완전 그렇다. 스물여덟에 만난 그는 전라도 광주와 서울 사이의 먼 거리를 거의 매 주말 한달음에 달려오곤 했다. 하지만 서른 넘은 남녀의 연애에는 신천동과 대치동 사이도 힘든 날들이 많았다. 헤어지기 싫어서 통금시간인 12시까지 꼭 붙들고 있고는 싶은데 퇴근 후 10시면 의지와는 다르게 늘어지는 몸, 무거운 눈꺼플, 몽롱해지는 정신. 그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 내게는 여정과 같았다. 아마 글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그 또한 집에 바래다 주기 귀찮아져서 나와 결혼을 서둘렀는지도 모른다. 그런거라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한다. 사실 적응이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12시 즈음이 되면 왠지 엄마가 오는 잠을 깨워가며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직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곳에서 잠옷을 챙겨입고, 세수를 하고,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든 그를 들어가서 자자고 깨운다. 이렇게 며칠 지내다 내 짐을 챙겨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지만, 이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어떤 곳도 아닌 그의 곁에 꼭 붙어 있는 것이고, 내가 가장 우선시 해야할 역할 또한 그의 평생 조력자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광주와 서울 혹은 잠실과 대치가 아닌 늘 손 닿는 거리에 그가 있고 그 거리가 매일매일 유지 되겠지. 이렇게 더 지내다 보면 서로 부대낄 날도 올거고. 그래도 지금처럼 보고싶어서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지는 그런 마음이 오랜 세월 변하지 않으면 참 다행이겠다.

마지막으로 결혼의 ‘투자가치’에 관하여. 지금껏 만나왔던 사람들의 재력이 천차만별이었던 걸 감안하면 그리 세속적이지도 못했던 것 같지만 글 속에서 ‘세속적인 여자’라고 표현한 걸 보니 어떤 물질적 가치 판단을 해보려 했던 것도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몇달 전 결혼을 결심하게 한 그 결정적 계기가 그가 가진 뛰어난 능력이나 잠재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계기를 만든 것은 바로 내 마음가짐이었다. 5년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 그에게 첫 인사를 건내며 내 왼손이 그의 날개뼈 언저리에 선뜻, 그리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얹어지는 걸 보면서 나는 과거에 우리가 헤어졌던 이유나 그 동안 그가 보내온 시간, 그리고 현재 가진 조건이 내게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온 진심이 담긴 제스쳐였고 참 예쁜 반가움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게 그렇다. 계산이라는 것을 전부 버리고 나면,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한 사람의 전부를 품을 수 있다.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각박했던 스물 여덟살의 나는 이런 본질에 가깝고 조건이 없는 사랑을 자격이 충만한 그에게 줄 수 없었다. 내 안의 내가 가시처럼 돋아나 스스로를 돌보는 일 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를 놓치고 나는 5년 동안 지나가는 안부도 조심스럽게 물어가며 진심으로 그리고 아주 순수하게 그가 행복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렇지 못 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용기를 냈던 것도 아마 어느 정도 내가 갚아야 할 마음이 있다고 여겨서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결혼의 ‘투자가치’를 지금 묻는다면 사랑을 사랑으로 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주면 마음이 돌아온다. 나아가 결혼이라는 것을 통하여 가족이 되고,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남동생이 축사에서 언급한 그 ‘조건없는 사랑’을 그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 가장 빛나는 기회이고, 가장 잘한 선택이고, 또 내가 남길 가장 큰 업적이 되지 않을까. 김세영은 박승환을 오래오래 원 없이 사랑하며 살았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은 내게 참으로 다행인 것이다.

2년이 되었네요.

2014년 10월 28일에 쓴 글.

토요일 아침, 슈스케 재방송이었다. 승새의 ‘장기하 콘서트 어디서 하느냐’는 문자에 답하려는데 갑자기 서태지가 나왔다. 얼었다. 수십초간 뇌가 작동하지 않은 것 같다. 서태지라니. 1992년 가족의 미국생활, 1996년 한국에 돌아온 나의 방황기, 1998년 외롭게 나선 유학의 길, 2004년 문창과 등록 결심 등 수 많은 마일표를 상징한다, 그의 음악은. 그렇게 한 때 팬으로서 범접하기 힘들었던 우상이 요즘들어 심심치 않게 공중파 매체에 보인다는 것이 나는 적응이 안되었다.

다음 날. 채널을 돌리다 이승환의 히든 싱어를 본다. 이 사람도 참 오랜만이다. 이승환을 특별히 좋아했던 적은 없지만 ‘함께 늙자 승환옹’ 이라는 팬들의 피켓을 보고 울컥했던 건 10대가 아닌 30대의 누군가가 그와 함께 늙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제.

13살 남짓이었을 어린 나에게 신해철의 노래는 충격적이었다. 그런 노래를 듣는 내가 성숙하다고 생각했고 그는 고급진 어른 같았다. 그러다 내 머리는 자랐고 그의 궤변이 싫어졌다. 틀린 말도 맞는 말처럼 늘어놓는 현란한 그의 화법이 궤변으로 들리기 시작했을 때 나 역시 건방진 20대였다.

그가 결혼을 하고, 아이 아빠가 되고, 푸근한 아저씨로 돌아오자 나는 뭔가 안심이 되었다. 불쑥 TV에 나와 얼굴을 비추면 반가웠고. 더는 궤변론자가 아닌 내 유년의 예사롭지 않은 오빠로 기억이 됐다.

7시 넘어 이어지는 업무를 마치고, 3년이 가까운 시간을 함께 동고동락한 동갑내기 부서원을 보내는 송별의 자리를 가졌다. 많이 웃었지만, 마음은 적적했고,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역전 홈런을 맞음으로서 기분은 더 울적해졌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축축 쳐지지’ 하는 사이 접하게 된 비보.

아!

살다보면 외마디의 탄식 밖에 나오지 않는 순간들이 온다.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것. 그게 누구의 죽음이든 말이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던 뮤지션들을 친근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고, 생각지도 못하게 혹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보내는 일들이 더 많아지겠지. 어려서 나는 잘 모르는 뮤지션의 죽음에 아! 하고 그릇을 떨구었던 엄마의 모습처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게 어떤이에게든 최대의 위로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를 애도하는 사람이 주위에 많은 것으로 보아 나도 참 음악 취향 한 번 멋진 지인들을 두었구나, 감사하며. Rest in Peace.

개념어 사전 p. 247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마친 뒤 배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사업가가 말을 건넸다.

“하루에 몇 번 고기잡이를 나가쇼?”

어부가 대답했다.

“한 번이오.”

“여러번 나가면 고기를 훨씬 더 많이 잡고 돈을 많이 벌 거 아니오?”

“많이 벌면?”

“돈이 많으면 훨씬 풍족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지 않겠소? 일에 매달리지 않고 느긋하게 항구의 풍경을 즐기면서 말이오.”

“내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잖소?”

이 이야기에서 어부와 사업가는 삶의 질을 끌어 올린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사업가는 돈이 삶의 질적 향상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는 데 비해 어부는 이미 삶의 질을 충분히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정답에 가까운지는 자명하다. 어차피 돈을 벌어 삶의 질을 살 거라면 돈을 버는 힘든 과정을 생략한 어부가 지름길에 있는 거니까.

흔히 삶의 질은 빈곤이 해소된 뒤에야 고려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앞의 이야기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이야기에 나오는 어부는 ‘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의미에서’ 외부인(사업가)의 시선으로 보면 빈민에 속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빈곤 자체도 그럴진대 삶의 질을 객관적인 지표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좋은 글이다.

 

혼자와 함께, 그 큰 차이.

아직도 가끔 꿈에 나오는 유학시절의 잔재가 있다.

해가 떠있을 무렵 깜빡 소파에서 잠들었다 깨고나면 어느덧 밤이었다. 캄캄한 거실벽을 두드리는 화면과 적막 속에 웅성이는 소리. 또 TV를 그대로 켜놓고 잠들었었나보다. ‘밥 먹을 시간이야’ 혹은 ‘들어가서 자’라고 나를 걱정하는 누군가가 깨워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 주섬주섬 더듬더듬 방까지 걸어 들어가는 그 고독이 일상일 때. 나 하나 감쪽 같이 사라져도 몇일 간은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었다. 그게 얼마나 뼛속까지 휑해지는 일이었는지, 그 절망이 얼마나 공포스러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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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연휴의 마지막 날.

재방송을 보다가 눈꺼플이 무거워져 잠에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는 어둑어둑 져있고, 또 홀로 떠들고 있는 TV를 보고 있자니 그 때의 그 기억이 너무 생생해졌다.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는 순간. 베고 잠든 것이 평생 나를 돌봐줄 사람의 다리이고, 그 사람도 비슷한 노곤함에 잠에 들어 곁에서 새근새근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던지.

그래, 다시는. 다시는 그런 날이 오지 않아, 나에겐.

엉금엉금 다가가 폭 안겨본다.
잠결에도 더 가까이 나를 당기는 팔.

예전의 나를 아는 누군가가 괜찮냐, 물어본다면
그럼요. 이제 11월도 무섭지 않은걸요. 대답하리라.
그 만큼 괜찮다. 아주 많이 괜찮다.

시작.

어렸을 적 홀로 떠났던 유학의 길이 늘 나 혼자로도 온전해지길 강요했으니, 그저 내 중심적으로 만들어 온 세상에 누군가를 들이고 그 틀을 넓혀간다는 것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상상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우리의 관계는 나의 공간을 마지못해 내줘야 하는 일이 아니라, 어느 날 우연히 걸어 들어간 서로의 세상이 참 자연스럽게도 ‘내 집’이 되는 잔잔한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생긴 확신 하나만으로 목에 핏대를 세워 결혼을 지양했던 지난 날 나의 고집은 아주 빠르고 허무하게 무너졌다. 머쓱하군.

아무쪼록 길었던 나의 방황에 이별을 고하고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나라는 중심에서 벗어났더니 더 소중한 것들이 내 삶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우리 둘의 세상을 전부 안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은 아버님의 품. 사위 손을 잡은 아빠의 손에서 느껴지는 유독 단단한 매듭. 부족한 며느리를 혜량해 주실 어머님의 호탕한 웃음소리. 사위 온다고 종일 콧노래 부르며 요리하다 지워진 엄마의 춤추는 눈썹. 생일마다 뭐 갖고 싶냐는 물음에 “매형 (Hawk brother) 한 마리”라 대답하던 남동생이 아직까지도 느끼지 못하는 그 실감. 그리고 퇴근 길, 저만치에서 마중 나오는 5년 전 그대로의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 달려가서 안겨도 모자랄 것 같다, 그 순간 느끼는 그 사랑을 표현하기엔.

이따금 살면서 살이가 힘들어져도 지금의 소중함을 잊지 않는다면 마음만은 늘 풍요로울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짧고 아쉬운 것인지 함께 알아가겠지. 찬란할 우리의 날들…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