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for Thought on Recent Affairs.

맨부커상을 받았으니 이제 소설도 한류다를 외치며 작가의 어깨에 그녀가 바라지도 않을 (물론 내 생각이지만) 짐을 지우는 문학계와 언론들. 그리고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하는 예술가이고 싶은 연예인까지. 대체 문학이, 예술이 당신들에게 주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 그저 나라를 알리고 돈을 버는 일이 문학이고 예술인 건지. 사실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남다른 실력도 내겐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기에 글을 못 쓰고 있는 것이지만, 왜 글을 안 쓰냐는 질문에 줄곧 ‘현실과 타협했다’는 핑계를 댈 수 있는 것도 대한민국의 여건이 아닌가 싶어. 문인들이 생활보조금으로 살아가고, 화가가 10만원에 대신 그림을 그려주며 먹고 사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노벨문학상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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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화장실 살인사건을 여성이 처한 위험이 아니라 약자가 처한 위험으로 치환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미국에서 흑인청년들이 살해되 촉발된 ‪#‎blacklivesmatter‬ 운동 당시 그게 불편했던 이들이 ‪#‎alllivesmatter‬ 로 맞섰던 것이 떠오른다. 정독 중 마주친 멋진 비유: “우리 집에 불이 붙어서 우리집 어떻게 좀 해줘 외치는데, 다른 집 사람들이 모든 집은 다 소중하다 훈수두는 격.” 다 소중하다는 원론 너머, 불을 꺼야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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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러니까 이제 중상해에 해당하는 의료사고 피해자나 가족이 한국의료분쟁조정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의료인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조정을 시작할 수 있다. 의사나 병원의 동의 따위 필요없이 잘 잘못을 따져 볼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물론, 국회 본회의에서 큰 이변이 없다면 그렇다고. 하도 밤새 안녕하신가?같은 나라에 살다보니 그 것 마저도 불안하긴 하지만.

신해철 법이라니. 뭐 이런 해괴한 법이 다 생겼어. 그런 좋은 법이 이 이름으로 불릴 줄 누가 알았겠어.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그런 분쟁 속에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이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쪽에 서서 열심히 응원하고 앞장서길 마다하지 않았을테지.

그래. 누군가가 못할 것 같으니까 그가 나서서 했던거라고 생각하자.

결국 해냈네요. 해냈습니다.

적당히를 모르고 모르고 몰라서.

올해 목표가 기타 배우기라는 그의 말에 생각한다.
내가 못 하는 것. 배워야 하는 것. 무엇일까.

요리다.

다음 약속으로 향하며 이어 생각한다.
나는 왜 요리에 취미가 없을까.
취미가 못 되니, 소질로 이어지지 않지.
사실 난 잘하는 것만 하려고 하는 일종의 자격지심이 있다.
못 하는 건, 못 하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라도 안하지.

예전에 손바닥에 소금을 툭툭 뿌리고 미련없이 터는
승희샘의 손을 보며, 쿨하다. 멋있다.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 내가 요리를 못 하는 이유는 비율의 문제다.
그렇지 어쩌면 뻔한 소리.

재료도 같고 기구도 같고 레시피도 있는데,
다만 나는 이 것과 그 것의 비율.
이 만큼과 저 만큼의 비율을 가늠할 수가 없다.
계량 스푼이나 컵 따위로는 해결되지 않는, 感 이라는 것.

적당히를 모르고, 비율을 몰라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면 한밤에 고양이 처럼 내내 울고도
앙금이 풀리지 않아 더 억척스러워지는 꼴.
주고 싶은 선물을 전하려 기다리고 기다리다,
경비실에 맡기고 오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 넘치는 호의.

적당히를 모르고 모르고 몰라서.

The Misery of Being the Most ‘Connected’ Generation in Human History (Work in Progress)

I write letters. Recipients are random. Taking a stroll around downtown or going back home on a bus, someone will pop into my head, sometimes for very particular reasons, sometimes for no reason at all. And I start writing as soon as I have access to pen and paper. It doesn’t take me long. Prose flows. It’s like I’ve just spoken to them last night, continuing on the daily doldrums of what happened the following day. I seal the envelope. I blatantly ask for their address. And I head out to the post office.

I love this moment of physical embarkation: the expectant three-block walk; the weight of hope in my hands, my message in a bottle; the feeling of tangible accomplishment, of being the architect of my desired relationships, both romantic and friendly. Somewhere in the not-distant future, I will recall fondly the days of hand-writing and mailing my letters, and will miss this ritual as I miss the ink stains from Sunday newspapers on my fingers; though, I hope that day never comes. This act of physical submission is a lot different than those messages we send through various social networking services. The ease of online communication in this era—those effortless, rash, one-click 3 a.m. and drunk transmissions—is an enemy of a romantic writer’s ego. Online communication is the lazy satiation of a Saturday night on the couch with pizza and ice cream, whereas the stroll to the post office forces us to abandon our retreats, move forcefully deeper into a relationship, to express ourselves, declaring our hopes to ‘please keep in touch.’

But the disappointment is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