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하다.

고등학교 내내 한 명의 남자친구. 꽤 긴 시간 그를 보며 지냈다. 어느 날 기숙사 창문으로 내다본 저 아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남학생들이 점처럼 작게 보였였다. 그 중에 내 남자친구가 누구인지 한 번에 알아보는 신공이 생겼다. 내가 그를 오래 관찰해 왔기 때문일 거다.

효림언니가 흰콩이를 낳았을 때 조리원을 방문한 나는, 늘 뱃속에서만 내 목소리를 들었을 흰콩이와의 첫 대면이 경이로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순간 눈물이 왈칵했던 이유는 고작 한 시간만 이렇게 바라봐도 눈이며 코며 입이며 이마까지도 눈에 익숙해지는데, 한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한 달을 몇 년을 바라보는 내 아이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하는 애잔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관찰이라는 게 무섭고도 중요한 것이리라.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첫 번째는 관찰이다. 일상을 관찰하고 발견하는 것. 그 것이 인사이트와 연결된다. 그래서일까, 힐러리 교수는 내 글에 막힘이 느껴질 때마다 오늘은 수업에 오지 말고 카페에 앉아서 하루 종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라고 풀어주었다. 그 때 지켜봤던 몇 명의 특이한, 혹은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얼굴이며 표정이며 섬세한 손짓까지 기억이 난다. 자욱한 세월만큼이나 낡은 책 속, 여사님 사진을 책갈피로 쓰고 계신 할아버지라던지. 나 처럼 몇 시간 동안 깜빡이는 커서만 들여다보고 있던 고뇌의 글쟁이라던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작은 행동, 소소한 습관들.

비록 좋은 글을 쓰고 있지는 못하지만 내가 가장 열심히 관찰하는 것은 나 스스로다. 지금 내 감정의 기복들, 우울이 어느 지점에 와있는지, 하루에 몇 보를 걸었는지, 최근 밥과 면의 비율이 어느 정돈지, 알러지는 어떤 이유로 발병하는지, 타인에 대한 내 잣대가 어디쯤인지,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지, 미움은 또 어디에 두었는지. 매일 관찰하고 살핀다. 그래서 나에 대한 글은 잘 쓸 수 있다.

작년 혼인신고를 하면서 그의 이름을 한자로 그려적고, 생년월일을 쓰고, 마음이 뭉클해졌었다. 이제 나 말고도 박승환이라는 사람을 관찰하게 되었구나. 늘 소파에서 잠들고, 뭔가에 집중 했을 때의 표정, 유난히 즐겨입는 옷, 싫어하는 사람, 몸 어디에 점이 있는지, 상처가 있는지, 어디가 아픈지, 또 어디가 예쁜지. 앞으로 아주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그에 대한 글도 잘 쓸 수 있겠지.

귀 뒤로 이어지는 목선을 엄지로 어루만지며 이렇게나 가까워진 그와 내가 놀랍다. ‘여길 이렇게 쓰다듬을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이 세상 나 하나 뿐이겠지.’ 유독 특별한 이 특별함. 무엇보다 내가 전혀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이 감정들을 겪고 느낄 수 있게 되어 고맙다. 나날이 겸손해지며 사소한 것에도 무척이나 감사하다. 매일 매일 본질에 가까운 사랑을 알아가며, 이제서야. 정말 지금에서야, 비로소 행복한가, 싶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관찰하는 중이라면 이 행복이 당신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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