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다행이다.

스물 여덞의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누군가는 집에 바래다 주기 귀찮아서 결혼을 했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결혼을 하니 여행 파트너가 늘 같은 사람이라 고민을 안해 편하다고.

결혼을 하면 헤어지지 않고, 다른 곳에서 잠들지 않고 휑하게 혼자인 기분 없이, 평생을 같이 있을 수 있는건가. 정말 신기하게도 그게 보장이 된단 얘긴가.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가 예민해서 엄마가 재워놓고 나가는 즉시 다시 울기 시작했다는데, 세살때의 그 버릇은 역시 어디 안가더라. 스무살이 되던 무렵. 내 방에서 나 혼자 잠드는 일이 무시무시하게 끔찍한 날이 자주 있었다. 평생 같은 자리에 타인과 누워 잠들면, 적어도 혼자는 아니니까. 그럼 세살 버릇도. 그리고 스무살 그 때의 공포도 해결이될까.

결혼, 왜 자꾸 주위에서 하라고 하는거지? 잠 푹 잘 수 있는, 외롭지 않은, 이런 상투적인거 말고 나 처럼 세속적인 여자에게 결혼이라는 것의 ‘투자가치’ 를 좀 더 세세히 설명해 달라고.

근데 뭐, 잠 푹 잘 수 있고 외롭지 않은, 그런건 꽤 할만 하겠다.”

– 2011년 1월 27일, cyworld @12afterglow.

과거에 쓴 글을 접할 때는 늘 절로 나오는 콧방귀에 ‘또 개소리 했네’ 싶지만, 서른셋의 끝을 바라보는데다 얼마전 정신없이 준비한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관점이 바뀐 것이지 꼭 쓸데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아 예전에 생각했던 결혼과 지금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교해보기로 했다.

일단 결혼하면 잠을 푹 잘 수 있다고? 그렇지 않다. 이유는 뭐, 혼자 써오던 침대를 반씩 나눠 쓰는 협소한 공간, 뺏고 뺏기는 이불, 선호하는 방의 온도차이 등이 있겠고. 그리고 무엇보다 며칠전 신사역 뒷골목에서 으르렁 대던 람*르기니를 보며 ‘저런 값비싼 민폐’라고 말한게 무색한 코골이. 그렇다고 누구처럼 지쳐 잠든 남편의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을 수는 없겠고. 시끄럽다고 옆구리를 주먹으로 강타할 수도 없겠고. 아직 미운정은 없고, 고운정만 있어서인지 ‘얼마나 피곤하면 저런가’ 싶어 안쓰러움이 크지만 (쓰담쓰담), 어찌됐건 결혼 준비를 시작한 몇 달전부터 지금까지 쭉 극심한 수면부족에 시달린 덕분에 만원 지하철에 낑긴 몸을 맡기고 선채로 잘 수 있는 고단수 뚜벅이가 되었다. 반면 꿈속을 헤메다 드문드문 의식이 들 때 곁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안도하곤 한다.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이 드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혼자 잠들고 깨는 것에 대한 스무살 그 때의 공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의 코골이가 자장가가 되주지 않으면 허전해서 잠을 이루지 못 하는 밤도 올테니, 그 또한 다행이다.

외롭지 않다고?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그의 노력 덕택에 어느 정도는 그렇다. 하지만 혼인 및 전입신고를 마치고 나오는 길 나는 그를 만난 후 처음으로 일종의 외로움을 느꼈다. 친정의 일원이 네명이었던 것에 반면, 이제 덩그러니 둘만 있을 단촐한 핵가족. 폐백 때 품은 대추 9개와 밤 3개를 빌미로 9남 3녀는 낳아야 하지 않겠냐고 농담처럼 던졌지만 사실 그 순간 나는 엄마아빠로부터 완전히, 아니 법적으로 분리된 것에 관한 서운함과 만약 그와 헤어진다면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젓갈도 없이, 숟갈도 없이, 혼자가 된다는 막연한 공포심을 느낀 것 같다. 물론 외로움을 느낀 대신 법적 부부가 되었다는 것의 안정감은 결혼전 주기적으로 질풍노도를 겪은 나에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큰 힘이다. 여담이지만 며칠 전 우연히 발견한 어떤 사실에 관해 혼자 덤덤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암만 그래봤자 넌 내꺼’라는 법적 족쇄가 한몫했다. 연애중이었다면 홀로 골머리를 앓고 스스로 상처를 들추다 결국 술 먹고 진상 피웠을 법 한 일인데도 말이다. 결혼이라는 것을 통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커지고, 포용할 수 있는 품이 더 넓어진 것 같다. 그게 9남 3녀의 몫이라 할지라도…(ㅋㅋㅋ) 그리고 이런 변화가 내게 생겼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바래다 주기 귀찮아서 결혼을 했다? 바래다 주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완전 그렇다. 스물여덟에 만난 그는 전라도 광주와 서울 사이의 먼 거리를 거의 매 주말 한달음에 달려오곤 했다. 하지만 서른 넘은 남녀의 연애에는 신천동과 대치동 사이도 힘든 날들이 많았다. 헤어지기 싫어서 통금시간인 12시까지 꼭 붙들고 있고는 싶은데 퇴근 후 10시면 의지와는 다르게 늘어지는 몸, 무거운 눈꺼플, 몽롱해지는 정신. 그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 내게는 여정과 같았다. 아마 글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그 또한 집에 바래다 주기 귀찮아져서 나와 결혼을 서둘렀는지도 모른다. 그런거라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한다. 사실 적응이 쉽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12시 즈음이 되면 왠지 엄마가 오는 잠을 깨워가며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직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곳에서 잠옷을 챙겨입고, 세수를 하고,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잠든 그를 들어가서 자자고 깨운다. 이렇게 며칠 지내다 내 짐을 챙겨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지만, 이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어떤 곳도 아닌 그의 곁에 꼭 붙어 있는 것이고, 내가 가장 우선시 해야할 역할 또한 그의 평생 조력자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광주와 서울 혹은 잠실과 대치가 아닌 늘 손 닿는 거리에 그가 있고 그 거리가 매일매일 유지 되겠지. 이렇게 더 지내다 보면 서로 부대낄 날도 올거고. 그래도 지금처럼 보고싶어서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지는 그런 마음이 오랜 세월 변하지 않으면 참 다행이겠다.

마지막으로 결혼의 ‘투자가치’에 관하여. 지금껏 만나왔던 사람들의 재력이 천차만별이었던 걸 감안하면 그리 세속적이지도 못했던 것 같지만 글 속에서 ‘세속적인 여자’라고 표현한 걸 보니 어떤 물질적 가치 판단을 해보려 했던 것도 같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몇달 전 결혼을 결심하게 한 그 결정적 계기가 그가 가진 뛰어난 능력이나 잠재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계기를 만든 것은 바로 내 마음가짐이었다. 5년만에 다시 만나는 자리. 그에게 첫 인사를 건내며 내 왼손이 그의 날개뼈 언저리에 선뜻, 그리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얹어지는 걸 보면서 나는 과거에 우리가 헤어졌던 이유나 그 동안 그가 보내온 시간, 그리고 현재 가진 조건이 내게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온 진심이 담긴 제스쳐였고 참 예쁜 반가움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게 그렇다. 계산이라는 것을 전부 버리고 나면,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한 사람의 전부를 품을 수 있다.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각박했던 스물 여덟살의 나는 이런 본질에 가깝고 조건이 없는 사랑을 자격이 충만한 그에게 줄 수 없었다. 내 안의 내가 가시처럼 돋아나 스스로를 돌보는 일 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를 놓치고 나는 5년 동안 지나가는 안부도 조심스럽게 물어가며 진심으로 그리고 아주 순수하게 그가 행복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렇지 못 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용기를 냈던 것도 아마 어느 정도 내가 갚아야 할 마음이 있다고 여겨서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결혼의 ‘투자가치’를 지금 묻는다면 사랑을 사랑으로 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주면 마음이 돌아온다. 나아가 결혼이라는 것을 통하여 가족이 되고,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남동생이 축사에서 언급한 그 ‘조건없는 사랑’을 그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 가장 빛나는 기회이고, 가장 잘한 선택이고, 또 내가 남길 가장 큰 업적이 되지 않을까. 김세영은 박승환을 오래오래 원 없이 사랑하며 살았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은 내게 참으로 다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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