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여(울리)는 독거노인의 삶.

5월의 끝자락은 참 기억도 하기 싫은데, 희한하게도 6월로 이어지는 나쁜 기억은 다 잊혀졌다. 봉평의 감자밭과 원주 양귀비밭을 엄마와 함께 걸은 맑은 기억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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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장마철이니 빨래를 삶아야 할 것 같아.

커다란 냄비를 사러 마트로 간 그. 돌고 돌다 결국 못 찾고 나온다.

= 세탁기에 ‘삶기모드’ 같은 게 있을거야. 해봐.

답이 한참 없더니, 밤 11시 40분에 빨래를 넣어 돌리고 사진을 찍어 보내준다. 사이클은 무려 두 시간 가까이 남았다. 으이그, 그 시간에 빨래를 돌렸다 언제 자려고.

몇달전 너 시집갈 때 드시려고 할아버지께서 담그신 술이 50년 되는 꼴을 보고 말거냐 는 엄마의 말에 그냥 땅에 묻어! 소리쳤던 나. 결혼에 관한 환상도 없고 오히려 회의적인 입장에 가깝지만, 드문드문 그 가능성에 마음을 여는 순간들이 오기도 한다.

어제처럼 빨래 푹푹 삶는 것 쯤은 내가 해주고 싶을 때. 혹은 밥을 혼자 먹게 하는 마음이 불편할 때. 냉장고 문을 여는데 맥주병이 청아하게 부딫히는 그 텅텅 빈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릴 때. 틀어놓고 잠든 TV는 내가 꺼주고 싶을 때. 잠결에라도 외롭게 하고 싶지 않을 때.

이렇게 받고 싶은 것 보다 해주고 싶은 게 더 많아질 때 드는 서른셋 낡은이의 결혼 생각. 나도 나를 내려놓을 시기가 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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