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괜찮다.

이별은 다양하다.

몸살전에 오는 두통처럼 조짐이 보이는 이별도 있고, 바람에 쾅! 닫히는 문 처럼 갑작스러운 이별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이별은 똑같이 힘들다. 헤어지고 나면 우선 내 편이 사라진 것 같다고 느낀다. 갑자기 화가 나고 갑자기 서글프고 갑자기 우습다. 그러다 보면 이러고 있는 내 자신이 어느 순간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걸 아니까 애인과 헤어진 친구가 부르면 어떡해서든 간다. 떠나간 그를 같이 신랄하게 욕하거나, 함께 인사불성이 되도록 취해 끌어안고 울지도 않고. 헤어지길 백번 잘했다며 더 좋은 사람 소개시켜 주겠다는 헛된 희망도 전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친구들과 술을 먹고 헤어진 자리에 찾아가 고추장에 빠져 있는 휴대폰을 꺼내 닦아주고, 취해서 헛소리 하는 옆에서 오징어를 오물오물 씹으며 야구 하이라이트를 보다가, 깼다 싶으면 택시를 불러 집에 보낸다. 이 정도면 별로 큰 폐는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만 돌본다. 나에게까지 미안하지 말라고.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 못 해준 것만 떠올라 미안함으로 가슴을 치고 있을테니까.

온다고 하면 오라고 한다. 머리도 제대로 안 말리고 며칠 굶은 사람처럼 와서, 한 쪽 구석에 앉아 울다가 웃었다가 화를 냈다가 하는 모습을 적당히 모른 척 둔다. 나는 옆에서 타자소리가 끊이지 않게 글을 쓰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드라마 한 편을 틀어놓고 본다. 부르면 잠시 눈길을 그 쪽으로 돌렸다가, 원망이든 슬픔이든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다시 하던 일을 한다.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인기척 하나만으로 마음이 조금 편해지기도 하니까. 말을 하기 보다는 주로 듣는 쪽이지만 이야기를 하는 동안은 몸 어딘가가 닿게 앉는다. 헤어지고 나면 만지고 만져지던 기억도 그리워 온몸이 휑뎅그렁하게 느껴질 때 손가락이나 무릎이 닿는 촉감은 꼭 그의 것이 아니어도 위로가 되곤 한다.

결혼과 출산 소식을 더 자주 듣게 되는 나이. 그런데 5월, 연이은 이별 소식을 접한다. 밤에 운전하는 일이 많아졌고 문닫기 직전의 카페에 앉아 있는 일도 늘었다. 모두 살면서 이별을 하고, 헤어지고 나면 누구나 힘들기 마련. 늘 웃으며 돌아서는 나에게 또한 이별은 그렇게 무섭다. 그의 냄새, 말투, 웃음소리, 하찮은 발걸음까지도 그리워 시도때도 없이 울컥한다. 껌종이 뒤에 그가 써놓은 중국집 전화번호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끝내 같이 보지 못한 영화 포스터를 올려다보며 강남역 한복판에서 호떡을 든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다 안다. 다 겪었으니까. 그러나 헤어진 후의 친구들에게 정작 하고 싶은 위로의 말은 이게 아니다.

헤어진 건 헤어질 수 있어서다. 헤어질 수 있을 만큼만 사랑한 거고, 그러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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