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강아지 사이.

침대 옆 스탠드를 켜지 말았어야 하는데, 빛이 있으니 잠을 더 놓친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웅웅대서 책을 집는다. 일주일 간 통틀어 10시간을 잘까말까 했는데도 불구, 책 한권을 거의 다 읽고 새벽 4시가 넘어갔다. 남의 글을 읽으면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대신 그걸 읽는 내내 내 글을 쓰고 있다. 읽는 동시에 생각을 하고 다시 정리가 된다.

“사실인진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 끊어진데요.”

그럼, 내가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건가?

– 이석원, 언제 들어도 좋은 말 pg.125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사람. 신기해서 바라만 봐도 살고 싶어지지. 그는 강아지 이야기를 할 때면 가장 신나해. 그럼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운 강아지가 죽은 후, 그에 대한 충격으로 다시는 날 두고 먼저 갈 존재에게 정 붙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도, 밤새 그의 강아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어느 덧 아침, 졸린데 전화를 좀 끊자고 할까, 하다가 한껏 상기된 개 이야기를 막으면 실망할까봐 눈을 비볐지.

“그 개말이야, 어때? 너무 똑똑하지! 완전 귀엽겠지?”

“응,  신기하다. 개가 참 장하네. 시간되면 키워보고 싶어.”

나는 여전히 개를 키울 생각이 없고, 그와도 헤어졌지만, 별 것도 아닌 그의 개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도 사랑한다. 책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인지, 그저 내가 사랑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이 후, 나는 평생 읽을 책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나도 그에게 그런 여자였으면 했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내게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아니었고, 나에게 영감 또한 주지 못 했다. 함께하는 시간은 무채색이었고, 늘 갈증이 났던 나는 그를 어느 집 강아지 처럼 대했나보다. 긴 통화에 그가 늘어놓은 수 많은 나의 잘못, 내가 그에게 준 상처.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의 인생에 더 이상 둘 수 없는 끔찍한 사람이, 덮고 싶은 책이 되어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랑한다면 간이고 쓸개고 다 꺼내 바칠 것 같았던 내가 왜 그에게는 내 진심 하나 온전히 건낼 수 없었던 것인지.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왜 그렇게 자주 썼는지. 어느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매사 마음을 먹고 봐야만 그에게 웃어줄 수 있었는지.

사랑하는 사이는 불안하다. 영화를 보러가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실망을 할까 미안하다. 표정을 살피고 자리를 내어준다. 서로가 배려하느라 시간을 다 쓴다. 편안함을 담보하지 않은 관계 대신에 사랑을 얻는다. ‘비가 누굴 사랑한다면, 적시는 일 밖에 할 수 없어서. 중력이 누굴 사랑한다면, 끌어내리는 일 뿐이어서.’ 하는 어느 시 구절처럼. 끌어내려 지더라도 사랑은 남지. 당신이 내게 그래 주었듯, 나도 그랬어야 하는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네. 깨 닫고 나니 미안하고 씁쓸하지만, 놓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주지 못 한 그 사랑, 꼭 받기를.

그리고 나는 “긴 여행을 다녔다가, 다 놀고 조금 피곤한 상태로 집에 오는 길 처럼, 나한테 와” 라고 말해주는 묵직한 사람의 삶을 읽으며. 천가지의 욕심이 나를 불러도 지치지 않고,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으로. 사랑이 변하면 또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남은 시간을 다 써서라도 함께 걷고 싶은 사람과 살아야지.

오늘 날이 좋았데. 해가 뜰 때 잠들어 지고서야 일어나 나는 모를 오늘 날씨. 그 날씨 만끽하며 어디선가 잘 살았기를. 강아지 이야기를 늘어놓던 당신도, 나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받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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