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을 버릴 계획을 세운다.

‘사람 마음 뒤돌아서기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다가도 또 어느 순간 ‘사람 마음이란 한번에 바뀌는구나’ 싶다. 나 없으면 죽겠다던 사람도 하루 아침에 내 눈이 어디 붙어 있는지 기억을 못하고, 어제까지 죽도록 싫었던 사람도 다시 보니 그럴 수 있고. 모두 일관성이 없다. 2011년 6월 28일 쯤, 뭐 그 쯤의 과거.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진심으로 행복했던 며칠. 나른해서 이대로 죽어도 억울하지 않겠다, 했던 어떤 주말. 가물가물 하더니 서서히 그리고 기꺼이 사라진다.

떠나고 싶은 마음에 들어간 여행전문 사이트에서 너무 가고 싶은 패키지를 발견하지만 웬만한 9박 10일 크루즈보다 비싸다. ‘이걸 가 말아?’ 며칠을 고민한다. 이번 달 예약 현황을 매일 체크하고, 과감하게 지를 자신도 없으면서 아직 자리가 비어있으면 안심한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선택 장애, 결정 장애. 여행 가고 싶다. 출장 말고, 관광 말고, 휴양 말고, 그냥 도착한 동네를 산책하는 것 쯤으로. 조금 걷다 아무데나 들어가 우동 한 그릇, 또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여유있다 못해 한가로운. 그리고 이해라는 것 조차 필요없이, 내 페이스가 자연스럽게 본인의 그리고 우리의 페이스가 되는 그런 딱 맞는 동행 한 명. 몇 시간 동안 말 한마디 주고 받지 않아도, 조급해 하지 않을 사이. 다녀온지 얼마나 됬다고 여행에 이토록 목이 마르다니, 정리하고 생각할 일들이 많은가보다.

너무 갖고 싶은데, 가졌다가 실상 그게 아무것도 아닐까봐, 실망하고 후회할까봐 두려워서 못하는 일들이 있다. 결혼이 그랬다. 그리고 내 꿈이 그랬다. 그래서 결혼을 위한 준비도, 내 꿈을 향한 실천도 하는 둥 마는 둥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견딜 수 없이 설레게 하는 여자, 미치도록 갖고 싶게 만드는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상 나도 가져보면 아무것도 아닌가, 뭐 그런 생각. 자존감 회복해야 하는데, 도대체 요즘 왜 이러지. 나는 아직 한참 예쁠 나이. 마음을 쓰러내려가며 여기 저기서 주워 읽는다.

“나는 빈 들녁에 피어 오르는 저녁 연기, 갈길 가로 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 번 빠져 다시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 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갔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 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 만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 못 하였으므로. ㅡ류근”

일에 관한 생각이 아니라면 대부분 살아오면서 주고 받은 상처에 있어 나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앞으로 만나고 살아질 그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되어야 할 것인가의 다짐이다. 서른둘의 끝자락에서야 욕심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다니. 왜 진작에 그러지 못 했을까, 어리석다. 어느새 나는 표독스럽고, 이기적이고, 허세로 몸을 돌돌 감은 몹쓸 인간이 되버렸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서 나를 포기할 수가 없다. 30년을 제멋대로 살아와서, 그리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아서, 어려울 거라는 말은 틀렸다. 계절처럼 변하는 나다. 돌아보면 늘 그래왔다. 벚꽃이 만개한 날 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는 싱그러운 봄이었고,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여린 꽃 봉우리 같았으리라. 그리고 어느 두어 달의 나는 누군가에게 들끓는 여름이었다. 억지스러웠고, 의심에 눈이 멀어 아무도 온전히 믿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가을. 집어 든 책에서 읽은 시 한 구절처럼 잎을 버릴 계획을 세웠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비축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 단풍을 징표로 내세워 나무는 혹독한 시기 앞에서 자기선언을 한다 […] 살아남기 위해 버린다는 것은 곧 아름다워지는 것임을 […]”

긴 겨울을 앞두고 나를 완전히 내려놓을 준비를 해본다. 될까? 응, 될 것 같다.

행복한 상상을 한다. 늘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나를 그가 찾아온다. 그가 기다리고 있을 대문 앞으로 곧장 나가지 않고, 주차장 지하 길로 돌아 나간다. 그와 마주하며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책에서 나오는 문지방 영역과 같다.

“아이가 크리스마스 양말 속에 손을 넣는 순간부터 양말 속 선물을 만지게 되는 순간까지. 먹장구름이 우리 머리맡에 잔뜩 운집해 있는 순간에서부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내리는 순간까지. 당신이 나에게 오기로 한 그날로부터 당신이 나에게 도착하게 되는 순간까지. 이 사이들 […]  이 짧은 순간에 농축돼 있을 설렘과 긴장과 예감과 떨림.”

아무쪼록 상상 속의 그는 내가 아는 그다. 태연한 척, 남자다운 척.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멋쩍은 느낌으로, 약간 어색해 하며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신나게 뛰어가다 그가 나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발걸음을 잠시 멈출 것이다. ‘그 쪽으로 갈게,’ 허락을 받고 싶다. 허락을 해주면 다시 뛰어가야지. 그리고 그의 앞에 서서 한 번 더 허락을 받아야지. ‘안겨도 돼?’ 나는 내내 웃을 것이고, 싱그러운 봄을 기억한 그는 잎을 버릴 계획을 세우는 겨울의 나를 여전히 애틋하게 여겨주리라.

하지만 이런 행복한 상상은 여러 순간 바뀌며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다. 결국 오래 잠을 청하지 못하고 다시 책을 집어 든다. 불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새벽은 바짝 다가왔다. 하룻밤의 결과는 대단하다. 얼마나 오래 갈 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산 속에서 몇 해 동안 수행하다 내려온 사람과 감히 견줄 마음가짐이다. 나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라 이렇게 아프고 어렵구나. 누구는 ‘네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내 몹쓸 성격이, 내 슬픈 천성이, 점점 나를 놓아주고 있다. 나는 더욱 잠잠해지고, 잠잠해진 나는 더 강해지고. 비로써 성장하고 있는 것. 내가 나를 죽일 것 같지 않다, 이제. 읽던 책에 적는다. ‘당신에게 집이 되고 싶다. 비로소 나를 찾았을 때, 평온함이고 안락함이고 싶다.’ 정말, 누군가에게 그래주고 싶다.

시가 끊임없이 먹힌다. 공감이 가는 문구에, 위안이 되는 말에, 밑줄을 두 번 세 번 긋고, 단어를 동그라미로 감싼다. 헛헛하다. 그리고 내가 쓰지 못한 글들을 다른 누군가 써줘서 읽을 수 있게 해준 것 만으로도 감격스럽다.

모든 시인에게 찬사를.

금새 추워진 아침이고, 잎을 버린 나는 단단하고 가볍다. 이제 내가 누군가에게 보답할 시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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