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20일 오전 5:36, 지금의 남편에게 보냈던 메세지.

———- 전달된 메시지 ———-
보낸사람: <sbstrawberrie>
날짜: 2011년 8월 20일 오전 5:36
제목: 웃음
받는사람: hilfi

전화를 끊고 자려고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데…선선한 새벽 바람이 들어오고 말이야. 나 최근에 좀 힘들었었다? 내 자신이 아니었었던 것도 같고. 근데 오늘 지선이랑 한강에서 몇 분 동안을 숨 넘어가게 웃었던 건,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겨서 나온 웃음이었던 것 같아. 탁 트인 강가와 우스꽝스러운 그 사진. 그리고 그에 반응하던 지선이의 모습이 완벽하게 어우러져서 한동안 느낄 수 없었던 들썩이는 내 어깨를 느꼈었던 것 같아. 내가 그 동안 내 슬픔. 내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고 오히려 맞서 싸우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알게 되었어. 그런 나를 외면하고 방치함으로써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도. 최근에 했던 이별도, 부모님과의 갈등도, 다친 다리도, 이젠 더 이상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도, 내가 받아 들여야 비로소 모두 나의 것이 되고 벗어날 수 있는건데. 근데 아까 지선이랑 실컷 웃으면서 슬픔도 분노도 모두 지금의 나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드디어 자유로워지더라구.

미안한 마음으로 조금씩 노력하고 있어. 이 것 또한 김세영이란 사람을 갈고 닦으며 더 빛이나게 만들겠지.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이 내 미소를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줄거야. 끔찍한 여름도, 끊임없이 내리던 비도, 내 안에 들끓던 더위도 물러가고, 새로운 계절이 곧 올거라는 희망에 설레기 시작했어. 작지만 내게는 너무도 오랜만에 찾아온 이 행복의 불씨는 아무도 앗아가지 못할거야.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앞으로 웃을일이 더 많이 생기고 말이야. 좋은 새벽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지는. 다시 희망하고 싶어지는. 다시 믿고 싶어지는 그런 새벽이야. 섬에 봉사하러 간다는 오빠도 지금의 나와 같은 다짐. 같은 생각으로. 이 여름이 끔찍했던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 속상한 마음이 남았다면, 잘 다스릴 수 있길. 상처 받는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한 용기가 생기길 바라며. 앞으로 더 행복해질 세영이가 앞으로 더 행복해질 오빠에게 남기는 일기야. 잘 다녀와!

Sent from my BlackBerry® smartph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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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Time For a Kindness Revolution – Tyler Knott

A much better writer than I could ever hope to be, Zora Neale Hurston once said, “There are years that ask questions and years that answer.” What of the years that do both? What of the months, the days that do both? We stand today in a world filled with questions, and many people will have many different ways of answering them. Some will stand and sing songs of revenge; some will whisper of revolt, of the absolute refusal to acquiesce. Some will rejoice, and their answers will be filled with pride. My answer to the questions posed, to all of the questions raised and unearthed over the year that has come and will soon pass, is simple. My answer is this: kindness. My answer is love.

In a sense, I, too, will whisper of revolution but not the expected sort. My wonderful, creative, inspiring partner, Sarah Linden, and I have coined a phrase over the many months that led to my book, North Pole Ninjas, actually entering this world of ours, and it is “kindness revolution.” In a world of hashtags and social media hoopla, we have such high hopes that this is one that spreads, and again, for such a simple reason. We need now, more than ever, a revolution of compassion, of grace, of tenderness that is given without regard to how it’s returned with complete regard to giving it, more when it is unearned. We must relearn the toughest lesson that it is then, absolutely then, that it is needed the most. Now, it is needed most.

If this is a questioning year, so many of those questions will undoubtedly come from the perfect mouths and perfect minds of our youth. Children will, filter-free and pure, ask us of divides in the world they wander through. They will ask us of what they see on news channels and they will wonder why. Always why. To this we must speak softly of kindness, of the need to spread it unabashedly and freely. To give, and give, and give some more until there’s nothing left to give, and then to give more after that. We must show them the way forward, the way to offering hands up to those that cannot stand alone, of protecting those we love, those we don’t yet know, those that share our beliefs and most importantly, those that may not. We must teach of charity, of the beautiful pleasure that comes, secretly and silently, when we do things for others for no other reason than it’s the right thing to do. More than teaching, we must show them, and we must show them so often that it becomes a routine they fall in love with, without ever realizing they’ve done so. We are the answers to the questions they will ask, and we must be prepared to be them. We must be prepared to be better.

I wrote something profoundly personal to me this morning, something that was my answer to the questions that have been raised over the months we’ve just come through. I wrote of looking forward, of staring into whatever darkness we may face and bringing our light, our hope into it. Of bringing our kindness, unashamed and true, everywhere we go, and giving it to everyone we meet. We will teach children this. We will show them to cherish their own light, to lend their sparks to ours and create a fire in doing so. We will teach them that sometimes, we must be the light, and chase out the dark.

A kindness revolution is at hand, and we are the orchestrators of it. The time is now to start new routines, new traditions rooted in the perfect soil of compassion, of empathy, of putting others before ourselves and loving every minute along the way. A baton will be passed in the days, the months, the years to come, and it is up to us to make sure that all those waiting for it will be ready to accept it. Start small, start from where you are, with what you have, but start. Kindness, my friends, simple kindness, can go so much further than you’d ever believe.

There are years that ask questions, and thank goodness, there are years that answer. Listen now, as we whisper in a collective breath, of revolt, of revolution. Listen, as we whisper of kindness.

Listen.

– From MariaShriver.com

2017년 10월 24일의 화요일, 오후 4:02분, 사무실.

마음이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내가 육아휴직만을 바라보고 살지 않았더라면, 요즘 만큼 막장에 치닫는 이 썩은 조직을 보고 나는 어떠한 분노, 어떠한 절망을 느꼈을까. 눈 질끈 감고 모른 척을 했을까. 아님, 사표를 던졌을까. 선배의 그릇된 조언으로 곤란한 처지에 놓여 곧 등이 터지고야 만 사회초년생 꼬꼬마를 보다 못해 내가 대신 사과를 했더랬다. 선배들이 그 모양이라, 상사라고 있는 인간들이 그 모양이라, 너보다 더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고 혜안이 넓어야 할 어른들이 그 모양이라, 내가 대신 미안하다고. 더불어 사는 사회라고 배우며 자랐을테지만, 사회는 결코 녹록치 않다. 태어날 마음이에게는 그런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라고 알려줘야 할까. 부모로서의 막연한 두려움.

내 염려와는 달리 아직 엄마의 뱃속 밖을 경험해 보지 못한 마음이는 천진난만하다. 꿈틀 꿈틀 태동이 느껴질 때면 없던 모성애가 생겼다가도, 지나간 줄만 알았던 입덧이 이따금 ‘안녕하신가’ 안부를 물을 때면, 임신 만큼 어려운 길도 세상에 없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남편만한 사람도 이 세상에 없다는 것도 같이 깨닫는다.

마음아, 너와 엄마를 향한 네 아빠의 사랑은. 그 깊이를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거야.

임신의 반을 넘어왔다. 다소 늦었지만, 내일이면 마음이의 성별도 알게 되겠지. 사실 아직도 엄마는 궁금속에 살고 싶긴 해. 네가 딸인지, 아들인지, 아빠와 티격태격하며 오가는 농담거리도 꽤나 큰 즐거움이었거든. 이러나 저러나 넌 엄마와 아빠가 다시 만나 사랑한 결실이고 기적이야. 그러니 그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해.

오늘도 엄마는 생각이 많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 마음이가 경험해야 할 세상에 관해, 우리 가족을 지켜야 할 아빠의 노고에 관해. 그래도 분명한 건, 네가 와줘서 다행이라는거야.

이런 저런 하루. 해마다 글감이 끊이지 않았던 짙은 가을. 몽피마 멤버들과 민둥산으로, 둔내로, 강화도로, 산정호수로, 고석정으로, 떠나던 숱한 가을들. 이젠 각자 엄마의 길을 걷느라 여행길을 나서지도, 삶에 치여 세련된 포장으로 예쁜 글을 써내지는 못 하더라도. 그 때의 추억으로 또 단출한 오늘의 기록으로 언젠가는 웃고 말겠지.

웃어야지 어쩌겠나.

오지배, 아니고 박지배.

이상순은 이효리에게 하루 7번만 부르라고 했다는데,
나는 매일 밤 오빠를 12번도 더 불러 깨우게 되었다.
얼음 찜질을 해주고,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고, 등과 배를 만져준다.

그렇게 밤 사이 둘이서 하얗게 전쟁을 치르고 나면
더 애틋해지는 부부애, 아니 전우애.
가여운 박승환, 아니 더 가여운 나.

임신이 이렇게 약도 못 먹고 힘든 건 줄 알았다면
좀 더 신중하게 사랑을 나눌 걸 그랬숴. (응?)

박승환 2세에게 몸이 점점 지배당하고 있는 요즘.
나의 우렁찬 재채기 소리가 남다르다.
이러다 기아팬이 되버리는 건 아닌지 몰라.

엄마와 딸.

종종 신기한 장면들을 보게 된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여고생과 엄마.
엄마는 딸이 더울까봐 계속 부채질을 해준다.
딸의 교복을 계속 만져준다.
딸 얼굴이 탈까 햇빛을 가려준다.
딸은 그대로 받고 있다.

사우나에서 목욕을 마친 엄마와 딸.
서른살은 훌쩍 넘어보이는 딸의 머리를 말려주는 엄마.
딸은 엄마의 드라이를 가만히 받고 있다.
엄마는 자신의 머리는 채 말리지도 못하고 딸의 머리를 말린다.
딸은 늘 있던 일 인 듯 한 표정이다.

매일 한번씩 엄마에게 카카오톡 메세지가 온다.
현수에게 속상했던 일이나 아빠와 있었던 일들을 말한다.
오빠의 안부를 묻고 나의 건강 상태를 묻는다.
드디어 혼자서도 홈쇼핑 앱을 설치하고, 카드를 등록하고
분리수거함을 구입했다고 자랑도 한다.
써보고 좋으면 너도 준다는 말도 잊지 않고.
그전에 챙겨준 반찬은 다 먹었냐고 묻는다.
별거 아닌 얘기들에 웃기도 한다.

엄마와 딸은 대체 어떤 존재들일까.

5년만에, 1년 전.

한번은 스쳤을, 지나가고 말았을
빌딩 숲에서, 빗물 아래서, 어느 소박한 식당문으로
우리는 몰랐지만 아주 모르지는 않았을
이 것을 운명이라고 부르면 너무 단순하진 않은지

흐릿한 기억 중 당신 목에 있던 점이
셔츠의 옷 먼지가
말 도중 떨어뜨린 자음 하나가
정신없이 훑고 지나갔을 복잡한 도시에서

손에 겨우 잡히는 간절한 모든 것들
그 중에서도 온전히 당신 것인 적이 없던 나
그런 나를 애써 잊었더라도
잠시였던 그 시간을 기억하며

사랑을 사랑으로 갚을 시간은 있어야죠
그 여름을 갚을 가을을, 겨울을, 봄을 내게 달라고
두렵지만 단호한 마음 당신께 건내보며

“오빠, 그 동안 잘 지냈어요?
우리 이제 헤어지지 말고, 평생 같이 살아요.”

러브레터.

오빠가 순수했던 시절에 아무런 조건없이 열정을 다해 사랑하게 된 세영아. 지친 하루 중 유일하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여보야. 50년을 함께 하여도 시간이 아까운 내 사랑아.

오빠는 이 세상에서 세영이가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요. 이렇게 같은 공간에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간절히 원하고 바랬지만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지금 이렇게 부부로서의 인연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매 순간 오빠에게 큰 힘을 주고 자부심을 느끼게 해요.

보고만 있어도 아깝고 너무 너무 사랑하는 세영아. 우리가 지금까지 겪어온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일들을 겪게 되면서 때론 웃고 때로는 좌절도 하겠지만 간절히 바라던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 아끼고 잘 극복해가요.

왜 사랑을 하느냐고 물어보았지?

오빠가 꿈에서라도 꼭 한번 만나고 싶을 정도로 간절히 원하던 사람이 바로 여보여서 사랑을 해요. 이렇듯 오빠한테 큰 행복을 주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사랑해요.

더 아끼고 오빠가 더 사랑할게요.

Untitled – Tyler Knott Gregson

I want to be the sound, that sound I am sure every person on every planet makes but no one will ever make quite like you, when you stretch your body as far as it will stretch in the morning. That soft mix of moan and squeal as you bend the sleep from your weary bones and remind them that they were built for being vertical no matter how much they love the feeling of lying down.

I wonder how it’d feel to be your favorite song. The one that makes you stand to look for the hand that can only land on the small of your back and spin you in slow circles to the words you know by heart. I want to be known by heart like all the songs that act as soundtrack to all the memories of all the things you’ve ever done.

I want to be your dreams, be they nighttime dreams that take you to places that you have never been or put air between your feet and the earth that you’re locked to or just simply let you sit around a table that you and I built out of old wood we found on slow walks through rainy fields.

– Tyler Knott Gregson

Fact Check.

국방백서는 2004년부터 주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국방부 관계자는 ‘주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북한 정권을 적으로 규정한 것만으로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표현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가장 최근에 발간한 국방백서 제2절 1항 국방목표에는 북한이 아닌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 주민과 명백히 분리한 것이다.

사실 적이든 주적이든 말장난일 뿐이고, 중요한 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라는 것이다.

어느 기사의 덧글이 와닿아서:

입대 전 신체검사를 받으면서도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라는 말이다. 훈련소에서도 정신교육시간에도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 이런 교육이 극우의 시작이며 악의 평범성을 자아낸다. 나치의 주적은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수 없이 학살당했다. 우리는 그런 나치가 나쁘다고 배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전체주의적 사고를 세뇌당한다. 과연 이 것이 바람직 한가.